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

인생을 바치기는 쉽지만 영혼을 바치기는 어렵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준다 해도 영혼까지 주기는 쉽지 않다. 맑고 빛나는 영혼은 어둠 속에서 반짝인다.    ‘우리 인생길의 한 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 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 지옥편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이어 단테의 신곡은 장편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산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사후세계를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형식을 빌어 인간의 욕망과 죄악, 운명과 영혼의 구원을 심오하게 그려낸다. 훌륭한 가문과 명석한 두뇌, 지도자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음에도 정치적 상황과 음모로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 고통을 겪는다.   단테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슬픔, 사랑과 희망으로 응집된 이 작품을 통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모든 역량과 영혼의 아픔을 이 책을 완성하는 데 쏟아 붓는다.     예술가는 아름답고 정직한 영혼을 꿈꾼다. 가난과 멸시, 무관심과 비판으로 육신이 허물어져도 위대한 예술가는 영혼의 횃불을 들고 미래의 역사를 비춘다.   아무도, 세상 모두가 고개 돌려 외면해도, 생의 아픔과 절망이 뼈와 살을 갈라도 진정한 예술가는 아름다운 영혼의 자유를 위해 생을 바친다.   1890년 7월 70일 해질녘, 고흐는 밀밭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권총은 빗나갔지만 이틀 후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을 돌봐주던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37년의 생을 마감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명성과 돈을 얻지 못했지만 그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작품을 그린 화가로 꼽힌다.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고흐가 살아 생전 판 그림은 단 한 점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뿐이다. 생활비를 전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화가는 때때로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놀라게 하지. (중략)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고흐는 ‘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를 그리며 창작의 희열과 기쁨을 참지 못해 영혼의 동반자 동생 태오에게 편지를 보낸다.     진솔한 영혼을 담아내지 못하는 작품은 거짓이다. 예뻐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은 덧칠에 불과하다. 예술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것은 생의 아픔과 절망을 견디는 힘을 준다.     꿈꾸지 않는 자는 죽은 것과 같다. 시체는 부패한다. 절망과 죽음에서 예술은 생명의 꽃을 피운다. 위선과 거짓, 가식의 주술방망이를 내려놓으면 먼동이 트는 새벽별을 만날 수 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가슴에 천국의 별을 단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 해질녘 고흐 동반자 동생 우리 인생길

2023-04-11

[이 아침에] 궂은 날이 지나면 맑은 날이 온다

낯설었다. 남가주에 한바탕 내린 폭우도 낯설었고, 쏟아붓듯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운전하는 것도 생소했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까지 내린 눈이 그려놓은 산마루가 생경했고,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건물도 설면하기만 했다.     세차게 몰아치던 겨울 폭풍이 잦아들고, 비구름이 물러가면서 맑은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낯섦은 곧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파란 하늘 아래 떠 있는 뭉게구름을 벗 삼은 야자수는 여느 때처럼 하늘거리고, 눈 부신 태양은 남가주에 봄이 다가옴을 알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빗속에서 운전하느라 땅만 보고 달렸는데, 이제는 제법 멀리 보며 운전할 여유도 생겼다. 앞차의 뒤꽁무니에만 머물던 눈에는 어느새 도로 표지판은 물론 머리에 하얗게 눈 모자를 쓴 산등성이도 들어왔다.     ‘맑은 날과 궂은 날에는 이런 차이가 있겠구나.’ 먼 곳을 바라보며 운전하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 차이는 궂은 날은 가까이밖에 볼 수 없고, 맑은 날은 멀리까지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센 비가 내리치는 궂은 날에는 아무리 멀리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운전이라도 할라치면 차선이 잘 보이지 않으니 땅만 보고 조심스럽게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앞에 차라도 있으면 그 차를 쫓는 게 안전하기에 그 차만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도로 위에 패인 구멍이나 떨어진 나뭇가지를 피하느라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와는 달리 맑은 날은 멀리 볼 여유를 갖는 날이다. 한참 앞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은 물론, 주변에 있는 건물이며, 멀리 보이는 풍경과도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날이다. 땅만 바라보고 달릴 때 보이지 않던 행인들과 각종 간판, 손을 흔들며 반기는 꽃과 나무들, 구름 사이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비행기까지 볼 수 있는 여유는 맑은 날이 주는 선물이다.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볼 수 있고, 궂은 날에는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다는 말은 우리 인생길에도 해당한다. 인생에도 궂은 날이 있다.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질병과 사고를 만날 때,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에 대한 안도감을 압도할 때, 걱정 근심에 밤잠을 설칠 때, 원하지 않는 문제에 휘말릴 때, 몸담은 공동체가 갈등에 휩싸일 때,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등 수많은 형편이 먹구름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궂은 날로 만든다.     인생에 궂은 날이 찾아오면 눈앞만 보기에도 급해진다. 멀리 볼 생각은커녕 그저 주어진 일, 눈앞에 닥친 일을 넘어서느라 경황이 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궂은 날만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궂은 날을 만드는 짙은 구름 위에는 맑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궂은 날이 지나면 반드시 맑은 날이 온다. 남가주에 불어닥친 꽃샘추위만큼이나 시린 인생의 궂은 날을 지나고 있다면, 조금만 참아보자. 먹구름이 걷히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맑은 날이 곧 올 것이다.     궂은 날이라고 꼭 고개를 숙이고 살라는 법은 없다. 맑은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궂은 날에도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봄이 와야 꽃이 피지만, 인생에서는 꽃을 피우면 언제든 봄이 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궂은 날일지라도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는 이들의 인생에는 먹구름이 걷히고 금세 맑은 날이 찾아올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우리 인생길 하늘 아래 부신 태양

2023-03-08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